• 최종편집 2024-12-0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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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로윈 축제와 관련해 이태원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는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한국기독교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의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와 가장 큰 교단인 예장합동총회의 총회장 권순웅 목사를 비롯해 기독교계의 주요 인사들은 서울시청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한교총과 예장합동 교단은 각각 목회서신과 성명서를 발표하며 위로의 말도 전했다. 그런데 한교총의 목회서신과 예장합동 교단의 성명서를 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이 있다. 모두 이번 사고의 발단이 된 핼로윈데이 축제에 대해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지적한 것이 전혀 없다. 아예 핼로윈이라는 단어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핼로윈은 고대 켈트족의 ‘samhain’ 신앙문화에 기원을 둔 것으로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리는 것이었다. 기독교 정신과 전혀 맞지 않는 문화다.

 

기독교 연합단체와 교단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메시지를 발표할 때 당연히 기독교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성도들에게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한교총 측 인사는 “내부적인 메시지와 외부적인 메시지의 얼굴이 달라야 한다”면서 “대사회적으로 아파하는 메시지와 내부적으로 건강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메시지를 섞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한교총은 대외적인 메시지만 발표했고 내부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게 핼로윈데이의 문제점에 대해 발표한 것은 지금까지 전혀 없다.

 

특히 한교총의 행적을 살펴보면 대외적으로도 이번과 달리 이전에는 참사를 당한 이들의 유족을 철저히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며 정부 측과 함께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 해양수산부 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후 화장당한 끔찍한 사건에 대해 한교총은 유가족을 찾아가 위로하거나 이와 관련한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았다. 우는 자와 함께 울지 않았고 정부가 곤란해하는 사건은 철저하게 함께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2021년에는 정부의 말을 따라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이들 중 사망자들이 발생해 백신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졌을 때 유족들을 찾아가 위로한 적은 전혀 없고 “동요하지 말고 백신을 맞으라”는 메시지를 발표하며 슬픔에 잠긴 유족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당시 한교총이 문재인 정부의 관변단체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전과 달리 한교총은 이번 이태원 압사 사고와 관련해서는 10월 30일에 긴급성명을 발표했고 10월 31일에는 대표회장단 목회서신을 발표했으며 11월 1일에는 서울광장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보도자료까지 만들어 배포했다. 정작 개신교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10월 31일 종교개혁일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보도자료도 배포하지 않고 말이다.

 

한교총이 참사를 당한 유족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지만, 이는 각 정부가 유족을 대하는 태도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대사회적 영향력은 정부와 함께 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고 성명서를 발표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일반인들은 한교총 대표회장과 예장합동 총회장이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그렇기에 이들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사회적인 영향력은 아브라함카이퍼가 주창한 영역주권론처럼 각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 영역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힘쓸 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 성경적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게 메시지를 발표하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사건에서 지적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리는 문화’에 기원한 핼로윈 축제에 참여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조문하는 것이 맞냐는 것이다.

 

슬픔에 빠진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기독교에서 금지하는 ‘우상 숭배’와 관련한 것이기에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시대에 바알의 축제에서 사고가 났을 때 선지자들은 조문을 갔을까?”라는 물음으로 대체될 수 있다.

 

조문을 갔다 온 기독교계의 대표적 목회자들에게 이에 대한 입장을 묻자 “옳은 지적이지만 이에 대해 지금 언급하면 언론의 화살이 기독교계로 날아온다”며 “시기상 맞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기독교의 복음은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며 세상을 변화시켜온 메시지였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고 눈치를 보며 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가 ‘시기’에 발목을 잡힌 것일까?

 

신전의식(Coram Deo)은 어디로 간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들이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송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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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 축제에서 사고 났을 때 선지자들은 조문을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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